보르네오섬의 벌목 산업은 지금도 두 나라의 선택 차이로 대비되고 있습니다.
1. 한국에 보르네오라는 가구회사가 있었던 이유 (Why Was There a Korean Furniture Brand Named Borneo?)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1980년대 한국에는 "보르네오"라는 이름을 딴 가구 브랜드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명이 아니라, 그 당시에 보르네오섬(특히 사바주와 사라왁주)에서 수입한 고급 원목의 품질을 반영한 상징적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보르네오산 티크, 멀바우, 철목 등은 강도, 내구성, 색감 면에서 최고급 목재로 평가받았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가구업계에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EU,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불법 벌목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 내 원시림 보호 압력과 수출 규제 강화로 인해 천연림 벌목을 줄이고, 재생산림(FSC, MTCS 인증)을 통한 지속 가능한 목재 생산 체계로 구조를 전환하게 됩니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합판, MDF, PB 등 인조목재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원목 수요가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인 목재 사업자들이 코타키나발루에서 철수하거나 은퇴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천연 원목을 대규모로 수입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며 더 이상 사업성이 남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목재업에 종사했던 한국인들의 은퇴 시기와 맞물리면서 사바주의 MM2H(말레이시아 장기 체류 은퇴 비자)를 통해 코타키나발루에 정착한 은퇴자들이 많아진 배경이기도 합니다.
2. 인도네시아는 왜 여전히 회색 벌목이 존재하는가? (Why Does Logging Continue in Indonesia?)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칼리만탄 지역)에서는 여전히 벌목이 진행 중입니다. 물론 정부는 SVLK(Sistem Verifikasi Legalitas Kayu, 목재 합법성 검증 시스템)이라는 자국 인증 시스템을 통해 재생산림 기반의 합법 벌목만 허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간·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무허가 불법 벌목이 상존하고 있고, 지역 브로커와 국제 유통망이 결합된 회색 벌목 구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회색벌목이란,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채 진행되는 벌목 활동을 말하며, 정부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특히 자주 발생합니다.
이는 중앙정부의 감시 역량 부족, 경제적 생계 압박, 국제 인증 시스템의 낮은 신뢰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입니다. SVLK 인증만으로는 미국이나 유럽의 높은 수입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목재는 일부 국가에서 수입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3. 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원유가 없었다면 윤리적 벌목 전환이 가능했을까? (Would Sabah Have Shifted to Ethical Forestry Without Oil?)
사바주는 말레이시아에서 경질 원유(light sweet crude)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이 경질유는 황 함량이 낮고 API 중력도가 높아 정제 효율이 우수한 원유로 분류되며, 고급 연료 생산에 유리한 특성을 가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바주의 원유가 왜 '좋은 기름'으로 평가받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제 블로그 글 [사바주의 원유는 왜 '좋은 기름'인가? 경질유와 정제의 모든 것]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자원 덕분에 국가 경제의 중심축이 벌목에서 석유로 이동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목재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환경 보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사바주에 원유가 없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벌목으로 전환할 경제적 여유도, 외교적 유연성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가 여전히 목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과연 벌목이 더 큰 환경 문제인지, 원유 생산이 더 큰 문제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무는 인공목재라는 대체재가 존재하지만 원유는 아직까지 완전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인류는 원유 생산을 필수불가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즉, 말레이시아의 윤리적 벌목 전환은 환경적 양심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 자원이 주는 경제적 선택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4. 인도네시아 재생 목재 생산의 구조적 한계 (Structural Limits of Indonesia's Sustainable Forestry)
인도네시아는 재생산림을 늘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러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보르네오 내륙 지역은 접근성이 낮고 운송비용이 높아 재생산림 지정과 관리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역 정부 간 협조 부족으로 인증 체계 운영에 혼선이 많고, 저소득층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불법 벌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한,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증을 획득한 목재 비율이 낮아 고급 시장 진입에도 큰 장벽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인도네시아는 재생목재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회색 벌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Conclusion)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같은 보르네오섬을 공유하지만, 벌목에 대한 태도는 자원 구조와 정책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석유라는 대체 자원을 바탕으로 환경 정책을 강화할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목재 수출의 유혹과 생계의 벽 앞에서 회색 벌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원이 윤리를 가능하게 한다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성과 경제 현실의 간극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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