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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키나발루

코타키나발루에서 마신 'Arak', 그 싸구려 술이 안동소주와 이어진다고? (Cheap Arak in KotaKinabalu, Tracing to Andong Soju)

by cotakay 2025. 3. 31.

15링깃짜리 말레이시아 위스키에서 시작된 이야기. 향만 남은 아락 한 모금이 전하는 증류주의 기원과, 그 흔적이 어떻게 한국의 안동소주까지 이어졌는지를 추적합니다. 싸구려 술 한 병이 알려준 역사적 연결고리, 지금 확인해 보세요.

1. 싸구려 위스키, 이름은 'Arak' (Arak in Malaysia)

마트 선반에 진열된 Walter 아락 술 (Walter Arak bottles displayed on a store shelf)

말레이시아에서 마신 그 술은 15링깃(3.3 USD) 한국 돈으로 약 5,000원 정도였습니다. 외형은 마치 저렴한 위스키처럼 보였고, 라벨에는 분명히 'Arak'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현지 슈퍼나 소매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싸구려 위스키나 보드카처럼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반적인 위스키의 20%에 물 80%를 혼합한 듯한, 맛이 거의 없는 맹맹한 느낌이었습니다. 위스키 특유의 풍미는 없고, 알코올 향만 남아 있는 듯한 단조로운 술이었습니다. 마시기보다는 냄새로 마시는 기분이랄까요.

술을 마시는 여행지에서 물 선택도 중요합니다. 말레이시아 생수가 안전한지 궁금하다면, [코타키나발루 생수, 여행자도 마셔도 될까?] 글도 함께 참고해 보세요.

2. 이 술은 어디서 왔는가? (Origin of This 'Arak')

Arak이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Araq '증류된 액체', 즉 '땀'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중동과 이슬람권에서는 대추야자, 포도, 사탕수수 등을 발효시켜 만든 증류주를 이렇게 불렀고, 이슬람 교리에 따라 공식적인 술 소비는 제한되었지만, 은밀한 전통주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아락이라는 이름은 이후 몽골제국을 거쳐 동쪽으로 흘러들어왔고, 이 증류기술은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름과 기술이 함께 확산된 것이죠.

3. 몽골 제국과 아락의 동방 전파 (Arak through the Mongol Empire)

13세기 몽골 제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이 지역의 기술과 문화를 흡수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증류기술이었습니다. 몽골은 이를 자신들의 유목문화와 융합했고, 이후 원나라를 통해 고려로 전파되었습니다.

고려 말기에 등장한 '소주'라는 술은 바로 이 시기의 산물로 보입니다. 이후 안동 지역에 군창기지가 세워지고, 증류주가 실용적으로 정착되면서 '안동소주'라는 이름의 지역 전통 증류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전래가 아닌, 문화적 내재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코타키나발루의 아락, 동남아식 변형 (Arak in Southeast Asia)

손에 들고 있는 Walter 아락 술 (Walter Arak bottle held in hand at home)

코타키나발루 인도네시아의 Arak은 중동의 전통 증류주와는 다소 다릅니다. 이 지역에서는 주로 사탕수수, 쌀, 코코넛 등을 발효한 뒤, 짧은 시간에 증류하여 제조비용을 줄였습니다. 숙성 과정도 없거나 매우 짧고, 향을 내기 위해 가향 처리가 이루어집니다.

제가 마신 술도 이 부류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대량 생산되는 술이었습니다. 외형은 위스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물에 알코올 향을 살짝 얹은 수준의 증류주에 불과했습니다. ‘Arak’이라는 이름만 고풍스러웠지, 실속은 없었습니다.

5. 품질 좋은 아락도 존재한다 (Premium Arak Exists)

지금까지 소개한 말레이시아 아락은 저가형 변종이지만, 실제로는 품질 높은 전통 아락도 존재합니다. 주로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중동·레반트 지역에서 생산되며, 포도 와인을 발효해 아니스 향료와 함께 증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고급 아락은 숙성 과정을 거치며, 물을 타면 우윳빛으로 변하는 ‘로우징 효과(louching effect)’가 특징입니다. 부드럽고 풍부한 향을 지닌 이 술은 일반적인 증류주와는 다른 깊이를 가집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Arak Brun, Arak Ksara(레바논), Razzouk Arak(시리아) 등이 있으며, 이는 현지 고급 식당이나 와인 바에서도 취급될 만큼 품격 있는 전통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6. 정리 (Conclusion)

말레이시아에서 마신 저렴한 'Arak'이라는 술은 맛도, 품질도 위스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이 술의 이름과 존재는, 수천 년 전 중동에서 시작된 증류술이 몽골과 원나라, 고려를 거쳐 동남아시아에까지 이어졌다는 문화적 유산의 작은 조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느낀 개인적인 경험은 사소하지만, 그 안에는 세계사의 흐름이 스며 있습니다. 아랍의 땀방울에서 시작된 증류주의 길이 안동소주와 같은 전통주로 이어졌고, 지금도 말레이시아의 골목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